서로 다른 나라에 머물다가
이곳 방콕에서 오랜만에 만나게 된 고향 친구.
토요일 아침, 함께 재래시장인 짜투착 시장을 갔다.

걷는 길에 친구는 깨진 시멘트를 본 후 더 조심히 걸으며,
멜번에 있는 보행시설이 새삼 잘 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.
그러나 지난 8개월 동안 프놈펜의 길을 걸으며
차가 뒤에서 오는지 항상 살펴야 했던 나는
보행자 길이 따로 있다는것에 신기해하며 편하게 걷고 있는 중이었다.
습도가 높은 도시에서 온 나에게 불어오는 그 바람은 시원하게 느껴졌고,
반면 친구는 손 부채질을 하며 덥다고 한다.
시장에서 흥정 하는게 이미 익숙해진 나는
가게 주인에게 설레설레 손을 저으며 너무 비싸다고 투정을 부렸고,
친구는 두 배의 가격이더라도 엄청 싼거라고 눈이 동그래지며 나를 본다.

. . .

사람은 자신이 겪고 쌓아 온 경험들을 바탕으로 삼아
지금 이 순간 자신한테 다가오는 일들을 보고 느끼고 해석하게 된다.
자기 자신도 다른 경험을 갖게 되면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상황인데
똑같은 입장에서 똑같은것을 보고 경험을 해도
삶을 다르게 살아 온 두 사람은 각자 느끼는 것이 다르기 마련이다.
거기에다가 다른 성격과 성향을 더한다면,
그 사람의 배경을 다 안다 하더라도
그 사람의 행동들을 다 이해 못 할 수 있을 것이다.

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날때의 상황은 항상 ‘나’와 ‘상대방’이다.
주는 사람, 받는 사람. 말 하는 사람, 듣는 사람.
남는 사람, 떠나는 사람. 가르치는 사람, 배우는 사람.
우리는 살아가면서 대부분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지낼것이고,
그 사람이 겪은 삶은 나와는 분명 다를것이고,
혹여,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나와 성격이나 성향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.
서로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느끼는것이 다를 수 있고,
아니, 그 선을 넘어서 정 반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.

. . .

서로를 이해하는 데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나누는게 중요한 것 같다.
그렇다고 나눈다고 그걸 다 같이 공감을 할 수는 없겠지 –
나는 지금 짜투짝 시장에서 부는 바람이 아무리 시원하다고 말을 해도,
내 친구는 그 시원함을 전혀 느끼지 못 하는것 처럼.
그래도 그렇게 하면 아 그 사람은 그런 이유로 그렇게 생각 할 수 있는거 겠구나
조금이라도 서로 더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.

우리가 살아갈 때에 이어가는 모든 관계에 항상 맴도는 ‘relativity’.

모든 상황, 배경, 성격을 다 안다 하더라도
서로가 완벽하게 백프로 이해한다는것은 쉽지많은 않겠지.

그러나 우리가 각자 느끼는 감정들 —
좋아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기쁨.
마음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슬픔.
분해서, 억울해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지푸리게 되는 화.

각자 다른 상황을 통해 찾아오는 감정일지라도,
다른 사람이 느끼는 그 감정은 분명 나도 느껴 본 감정일테고,
그것을 알고, 서로 조금만 더 신경 쓰고, 이해할려고 노력을 한다면,
상대방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
같이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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